복음팀
89기 복음학교 섬김이 모임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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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기 복음학교 약속의 말씀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할렐루야! 89기 복음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 8월 17일 목요일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동원교회(담임:이귀봉 목사)에서 [89기 복음학교 섬김이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김은영 선교사의 오프닝으로 시작해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올려드렸습니다.


 

 

윤필영 선교사(복음사관학교)는 에베소서 1장 3~6절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지 않던 우리에게 이해하지 못할 상황과 고난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은혜로 의롭다 하시는 그 영광을 찬송하는 자로 모든 섬김이들을 세우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메시지 후 주님께서 불러주신 각자의 섬김 영역이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각 직임별 소그룹 모임을 통해 이번 복음학교에 불러주신 기대감을 함께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그룹 모임을 마치고 준비된 저녁식사를 하며 기쁨으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식사 후 함께 모여 마지막으로 89기 복음학교를 열어주신 주님께 모든 훈련생과 섬김이, 학교를 올려드리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다음은 섬김이 모임 메시지 요약입니다.

퍼즐 맞추기를 해본 적 있는가? 비슷하지만 맞지 않는 조각들을 찾아서 정교하게 맞춰야 한다. 이 퍼즐을 쉽게 맞추는 법이 있다. 큰 그림을 먼저 보는 것이다. 인생에도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 있다. 돌파해 보고 싶지만 어렵고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큰 그림을 보라.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 한계에 부딪힐 때 큰 그림을 보라.

 

요셉은 곡식단, 해와 달과 별이 절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살인교사를 당하고 노예가 되었다. 강간미수범으로 몰려 감옥에까지 갇혔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을 들려주셨는데, 내가 왜 감옥에 가야 하지? 왜?’ 요셉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 이삭이 죽고 나서 비로소 깨달았다(창50:17-20). 하나님은 큰 그림을 가지고 요셉의 인생을 이끌어 가고 계셨다.

 

다윗은 그에게 들려진 복음이 실제가 되기까지 매우 많은 고통을 당했다. 왜 사울에게 쫓겨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왕으로 삼으시고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삼하5:12)​.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면서 예레미야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을 것이다. 하나님이 건져주시는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도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다는 경고를 들어도 몰랐다(렘29:10).​ 아픔과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했는지 모른다.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겠다. 두려워하지 말라.’ 재앙을 내렸을 때도 돌이키지 않았던 백성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는데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슥12:10).​ 스가랴에게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깨닫게하시고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셨다. ‘내가 문제였구나. 생각한 것보다 내 상태가 심각하구나.’ 내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알게 하셨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스13:1)​.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신다.

 

최근에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염수를 방출에 관한 이슈가 있었다. 방사능에 피폭된 지역에서 기형아 출생률과 암 발생률이 높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존재가 죄로 오염된 사실에 대해서는 정치계, 시위단체, 미디어가 광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결코 순진무구한 백지상태, 중립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지을 때 안도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존재적인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를 바꿀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심각한 상태임을 들으면서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내 인생을 향한 큰 그림이 여기에 있다. 내 존재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것, 목마름과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나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일하시는 초대형 프로젝트, 큰 그림이다.

 

요셉, 다윗,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 사람을 다룬 것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으로 그쳐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나오게 하는 은혜와 간구의 통로로 한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다. 복음은 나 하나에 그쳐지지 않는다. 나를 통해 반드시 누군가에게 복음이 흘러가게 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완전히 망한 것 같은,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한 상황이 있다. 그런데 이 상황들은 사실 하나님께서 복음을 계시해주시는 것이다. 스스로는 결코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우리는 짧은 퍼즐조각같은 인생을 살기에 실은 무지하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삶의 퍼즐조각들을 맞추어오고 계셨다. 인생 가운데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를 통해 우리는 나도 알 수 없던 깊은 목마름을 느끼게 되고, 인생의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나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을 하늘을 향해 들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문제가 왜 필요한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큰그림은 은혜를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상 최고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마음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시50:1).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자신의 성품과 본성에 반대되는 것을 결코 하실 수 없다. 불변하신 하나님은 감정과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으시며, 거짓말을 못 하신다. 또한, 그분은 진노의 본성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선하시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과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욥42:1-2).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 가장 강한 분이지만 가장 약하게 되셨다. 최고의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으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과 자비로 대하셨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전능의 큰 부분은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다(엡1:3). 그분은 우리가 계획하거나 생각하기도 전에 복을 계획하셨다. 그런데 신령한 복을 받는데 있어야 할 전제가 있다. 우리가 신령한 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심각한 죄 가운데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신령한 복은 무엇일까? 구원의 은혜이다. 나의 공로가 전혀 필요 없는 은혜로 주어진 하늘의 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은혜에 어떤 값을 지불하셨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가볍게 취급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자녀 삼으셨다(엡1:4-5). 절대적이다. 구원의 시작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나의 공로는 전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거룩하시고 빛이신 그분에게 우리는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다. 그런데 거룩하고 흠 없는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것이다.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잠잠할 수 없다. 은혜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면 자신을 던지게 된다. 율법과 행위로 의롭게 되려다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 자에게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는 진리는 그를 진정 행복하게 만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큰 사랑을 인하여(엡2:4) 죽으셨다. 누구든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다.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은 신앙의 기쁨을 회복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신다(딛2:13). 경건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댓가지불 하셨다. 이 은혜의 깊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옛사람에 대해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의로워지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큰 그림은 내가 얼마나 망가져서 쓸모없는 자인지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생에 구원의 퍼즐조각을 맞춰오고 계셨다.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끄셨다. 실패와 절망 속 힘들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는 은혜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신령한 복이다.

 

하나님의 큰 그림에 클라이막스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엡1:6). 우리의 존재는 이를 위한 것이다. ‘망한 것도 은혜였군요! 없었으면 좋았을 수많은 일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이었군요!’ ‘왜 비참한 상황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가?’ ‘왜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하시는가?’ ‘왜 복음을 살게 하시려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 비참한 나를 더욱 발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더 깊이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그날에 가서 하게 될 일이 무엇일까?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서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음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지? 나 지옥불에 있어야 하는데?’ 은혜의 영광을 맛본 사람들은 더이상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다. 자신을 잊어버린다. 아직도 자신이 소중한가? 그렇다면 아직 은혜의 영광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을 향해 더욱 사로잡히게 한다. 강력한 자석처럼 이끌려 가게 한다.

 

은혜의 영광을 찬송했던 바울의 삶은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었다. 십자가의 복음을 만난 사람들은 차가운 현실을 만나도 그분을 더욱 찬송하게 될 것이다. 은혜를 받은 자는 나를 악착같이 챙기는 사람이 아닌 나를 배설물로 여기는 사람이다. 살아도 죽어도 정신이 온전하여도 미쳤어도 그분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다.

 

인생에 이해가 되지 않는 퍼즐조각들을 만날 때 하나님의 큰그림을 보자. 때를 따라 긍휼을 얻게 하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십자가의 품으로 뛰어드는 것이다(히4:16). 그분이 우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이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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